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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립 다음해, 첫번째집 사랑방에서 화장실도 없는 그 집은 지친 사람들이 어느 때고 찾아와 몸을 녹이고, 상처로 얼룩진 마음에 위로를 주고 받는 사랑방이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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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 이름도, 한글도 몰랐던 복님이는 막달레나의집에 살며 호적을 갖게 되었고 한글도 깨쳤다. 첫번째 집인 경남식당 주인 부부는 우리의 가장 든든한 이웃이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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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6년. 겨울 성탄 무렵 용산역 광장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였다. 종착역이었던 그 예전의 용산역은 삶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기도 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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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일점 서유석 신부님의 노래. 다함께 떠난 야유회에서 여성들은 술판을 벌이지 않고도 이렇게 신나게 놀 수 있다며 신기해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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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8년. 막달레나의집에 크고 작은 잔치가 벌어질 때면 언제나 춤판이 벌어졌다. 물론 그 중 제일의 춤꾼은 문애현 수녀님이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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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립 초기부터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윷놀이를 하고 세뱃돈을 받았다.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언제나 친구처럼 여성들과 오랜 시간을 보냈고, 그 시간들은 우리의…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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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4년 성매매집결지 내에 작은 상담소를 열어 여성들이 언제고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. 이 상담소는 4년간 운영하다 중단된 뒤, 2004년 다시 운영되기 시작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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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4년 용산역 깡패 안금순의 소개로 용산가족공원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시작했다. 장사를 마치고 식구들 먹일 고기를 손에 든 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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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5년 7월 12일 막달레나 공동체 20주년
기념 미사 후 단체사진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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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년간 갈고 닦은 춤실력을 자랑하는 막달레나공동체 기념행사 자리. 서신부님과 배가 불렀어도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전직원의 모습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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